앓리 앓리 앓라셩 앓라리 앓라
김박사는 동네 뒷산 초입에 살고 있었다. 나는 언덕을 기어 올라가다시피 달려가 다급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이 열렸다. 마당은 황량했다. 김박사는 텃밭을 일궈볼까 해 라고 말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그녀의 작물을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백발에 단발머리, 빼빼마른 김박사가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행히 그녀의 집은 내 집보다는 시원한 편이었다.
“몬 일인데. 얼굴이 그래?”
“언니. 이거. 이거 한번 들어볼래요?”
숨을 고르며 테이프를 건넸다. 모야. 모야. 하며 김박사가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요거. 요거. 아무 것도 안 써있네?”
그녀가 몸을 일으켜 가벼운 스텝으로 걸어가더니 카세트 플레이어 전원을 켰다. 음악이 흘러나오고부터 우린 말이 없었다. 음악이 끝날 때쯤 그녀가 어렵게 일어나 플레이어를 끄고는, 머릴 긁적이며, 음. 어 음. 뭐 좀 마실래? 했다. 나는 고갤 끄덕였다. 그녀가 냉장고에 도착했겠다 싶을 즈음, 비명이 들려왔다.
에어컨이 말썽이었다. 찜통 같은 나날의 매일이었다. 사흘간 에어컨 제조사에 지난한 전화 연결을 시도한 끝에야 as 요청에 성공했다. 일주일 후 방문한 기사는 대충 살펴보더니 이건 기기상으론 저언혀 문제가 없어요 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럼 가스가 부족한 거냐 묻는 말에 그는 단호하게 깨스는 한 번 주입하면 엥간해선 잘 누설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왜 이러냐 하니 너허모 더워서. 이번 더위가 너허모 심해서, 에어컨 바람이 별로 안 시원하게 느껴지는 거란다. 더는 할 질문을 못 찾던 내 눈 앞에, 그는 온도계를 꺼내 에어컨에 들이댔다. 자 보셔요. 찬바람이 나오고는 있는디에, 나오자마자 식는 거여요. 자 보셔요. 온도 보이시죠? 요점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기사는 어딘지 불안한 기색이었다. 아마도 출장이 밀렸겠지. 땀으로 흥건했던 그는 출장비 이만원을 챙겨 잽싸게 집을 떴다. 나는 방바닥에 눌러 붙어 선풍기를 강으로 틀었다. 휴대폰을 들고 SNS를 둘러보았다. 100만년만의 무더위! 어쩌고 하는 기사를 퍼 나른 사람들이 많았다. 더위를 잊는 방법이라며 올린 황당하고 시답잖은 유머 포스팅이 가득했다. 화면을 획획 넘기다 멈췄다. 가끔 들르는 음반 가게의 입고 글 이었다. 그 중 눈이 가는 음반이 한 점 보였다. 검정 자켓에 아무런 정보도 쓰여 있지 않았다. 설명 글에는 ‘작자 미상의 전자음악. 듣다보면 이상하게 계속 듣게 되는 마성의 테이프. 제가 소장하고 싶지만, 다른 청취자들의 신선한 경험을 위해 어렵사리 내놓아 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거기 사장이 별일 아닌 것에 호들갑 떠는 타입이 아닌 걸 알기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 생각 없이 라고는 했지만 실은 30분이나 걸렸다. 이유는 달랑 이번 더위가 너허모 심해서였다.
그 음반가게에는 늘 이상한 것들로 가득했다. 난 자주는 아니고 이따금 들르곤 했다. 알바비를 쪼개 아낀 돈으로 가끔 음반 몇 장을 사 듣는 것, 그게 내 유일한 취미였다. 전철은 다행히 시원했다. 하지만 전철에서 몸을 꺼내자마자 냉기는 급속도로 사라지고 땀이 줄줄 흘렀다. 역을 빠져나와 음반 가게로 향했다. 가게까지는 좁은 골목길을 몇 번은 거쳐야 했는데, 그게 갈 때마다 늘 헷갈려 찾는데 애를 먹었다. 쇠락한 상가 건물 틈바구니서 드디어 간판을 찾았다. 가게는 후텁지근했다. 사장에게 대뜸, 말을 걸었다.
“저. 저. 오늘 글 올리신 것 중에 검정 자켓 테이프 팔렸나요?”
그는 말없이 고갤 저으며 카운터에 테이프를 올려놓았다.
“엄청 빨리 오셨네요. 방금 매대에 올리려 했는데.”
“하하. 넵.”
“계산해 드릴까요?”
“네.”
“재밌게 들으세요.”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전철을 타고 앉아 테이프의 비닐 포장을 벗겼다. 자켓을 열어보니 정말 캄캄했다. 그 어떤 정보의 터럭도 적혀있지 않았다. 빨리 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집에 도착한 나는 방에 뛰어 들어가 재빨리 앰프를 켜고,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고, 곧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가뜩이나 더운 방이 오래된 전자 기기들의 작동으로 더 뜨끈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음악을 들었다. 계속 들었던 것 같다. 밥 먹는 것도 잊고, 담배도 잊고 어쨌든 그 음반을 계속해서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음반을 산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화장실에 가고는 기겁을 했다. 물기가 있는 곳에 싹들이 돋아나 있었다. 냉장고에 넣어 둔 물병에도 싹이 나 있었다. 싱크대에 담가놓은 식기에도 싹이 자라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잠깐. 잠깐. 저거. 이거. 저거. 그. 음악 좀 꺼, 보고. 머리카락이 쭈뼛 쭈뼛 서고 있었다. 급격하게 등장한 녹색들로 인해 갑자기 아아. 눈이 조금 편안해지는데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제정신이었을 리 없다. 그저 어지러웠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싹을 뽑았다. 물병이나 식기의 고인 물에 피어난 것은 건져내면 될 것이었지만, 화장실 타일 틈에 피어난 것들은 제거하기 쉽지 않았다. 세 들어 사는 집이라 나중에 집주인이 문제 삼을 것 같아 청소 솔과 수세미로 싹을 박박 긁어냈다. 세탁기 호스에도 싹이 줄줄이 피어 있었다. 곰팡이나 물 때 같은 것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싹이, 것도 이렇게나 빨리, 아무 이유 없이 자라는 게 말이 되나? ‘세상에나 이런 일이’에 제보해도 될 만한 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벌어진다고? 그럼 나 티비 출연하는 건가. 머리가 벙벙했다. 일단 밥을 먹고 생각하기로 했다. 분명 당이 떨어진 거다. 저런 싹은 말이 안 된다며 머리를 흔들었다.
밥을 먹고 정신을 차려도 싹의 찌꺼기들이 눈에 보였다. 헛것은 아녔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에어컨 기사가 뭘 하고 갔다거나 그런 건 아닐 테고. 달라진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음반을 1박 2일간 들은 일 밖에 없었다. 침을 삼키고, 음반을 다시 재생해봤다. 조금씩 끊어가며 들어봤다. 어찌 들으면 평범한, 전자음악이었다. 그런데 음반 전체에 들어가 있는 특정한 소리가 있었다. 짧게 잘린 타격음이었다. 많이 일그러져 있어 무슨 악기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런 저런 샘플을 쓴 거겠지..? 하하. 아마도? 아니면 무슨 악기던가? 어 그래서? 뭔데? 어어어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테이프 자켓 마냥 뇌가 새카매지는 것 같았다. 화장실 문을 다시 열기 두려웠으나 눈을 질끈 감고 밀었다. 뾰롱. 새침한 연둣빛이 보였다. 나는 음악을 끄고 다시 싹을 뽑았다. 싹과는 두 번째 만남이라 뽑는 게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 곳이 셋방임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곤 테이프를 꺼내들고 집을 나섰다. 김박사에게 가야했다. 내가 의지할 데라곤 주변에 김박사밖에 없었다. 김박사는 40대 중반의 한때 뮤지션이었던 자로, 이름만 김박사지 사실 박사 학위라고는 없었다. 그저 곧잘 이상한 것들을 잘 찾아내고야 마는 동네 척척박사에 가까웠다.
끼약!
비명의 발생지로 나는 달려갔다. 열린 냉장고 문 앞에, 김박사가 놀라 자빠져 있었다. 물병에 돋아 있는 싹을 보며 그녀가 내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언니이.. 이거 음악 때문인 거 같은데. 한 번 분석해 줄 수 있어요?”
나는 놀란 그녀에게 대뜸 부탁 먼저 했다. 그녀는 눈을 두어번 껌뻑이더니 고갤 끄덕였다.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응접실에 앉아 정체불명의 싹과 그 음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커피 향이 퍼져왔다. 문득 음반 가게 사장의 묘한 미소도 떠올랐다. 아리송했다.
며칠 뒤, 김박사가 집에 오라는 문자를 보내 왔다. 나는 곧장 집을 나섰다. 그녀가 커피를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며 여기저기를 클릭했다.
“이거 웃겨. 한 번 봐봐. 그 짧은 소리들 있잖아. 다 잘라서 이어 붙이고 그걸 느리게 늘어트려 봤는데에...”하며 그녀는 스페이스 바를 탁! 눌러 소리를 재생시켰다.
그녀의 작업실을 가득 메운 소리는 이러했다.
아이구우우우야 끄응 차아 읏차 읏차차차차차 끄으으응끵 에그구우우우야 끄응 차아 읏차 읏차차차차차 끄으으엥끡
순간 테이블 위 커피포트 뚜껑이 폭 하고 열리더니 정체 모를 식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머리가 멍했다. 뭐가 됐든, 그녀의 텃밭 취미가 재개될 거는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