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앓는 소리 좀 그만하게
어둠이 드리운 시간. 가로등 불빛만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무단 투기된 쓰레기들이 거리에 널브러져 있다. 바람에 쓰레기가 나부낀다. 코트 깃을 여미고 노신사가 혀를 끌끌 찬다. 지팡이로 쓰레기 더미를 건드려 보다 이내 고개를 휙 돌린다. 그는 길을 걷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내 골목 끝을 빠져나온다. 건물 한 채가 서있다. 주위는 황량하다. 건물에 걸린 네온사인이 번쩍거린다. Bar ★, Bar와 ★가 번갈아 가며 깜빡인다. 그는 지하로 내려간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쿵쿵 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문을 열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바에는 나이깨나 잡순 양반들이 줄줄이 늘어 앉아 있다. 마스터가 노신사의 얼굴을 보더니 무표정하게 고개를 까딱한다. 그가 바의 빈자리에 가 앉는다. 옆에 앉은 이가 이죽거린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일이 많았어.”
“허. 뭐 언제는 없었나.”
그가 마스터에게 ‘늘 마시던 거’를 요청한다. 마스터가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생맥주 한 잔을 내온다. 은색 볼에 프레츨과 볶은 땅콩을 한가득 담아다 무심하게 툭 내려놓는다.
옆에 앉은 신사가 혀를 끌끌 찼다.
“자네는 말야. 허.”
그러더니 손사래를 친다.
옆 신사는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저렴한 아이리쉬 위스키였다.
맥주 앞의 노신사가 모자와 코트를 벗어 둔다.
“하이고 끄응.”
“거. 자넨 말야. 그. 그. 앓는 소리 좀 그만하게. 백날 말하잖나. 내가. 거 습관이라고 그거.”
옆자리 위스키 신사가 또 혀를 끌끌 찬다.
“대체 뭐가 문젠가. 우리 같은 자들은 한 번씩 털어내야 한다니까. 정기 검진 받으라고 그거. 맨날 앓는 소리만 해봐야 뭐가 해결이 되나?”
위스키 신사가 프레츨을 한 움큼 집어가 우물거린다.
“예전에도 그런 식으로 해 보지 않았나. 나도. 이번엔 좀 두고 보려는 거지.”
맥주 노신사가 크게 한입 들이키며 말한다.
“우리 같은 자들은 그 뭐냐. 탱탱볼 같다고. 탱탱볼은 튕기고 놀다보면 한번은 꼭 먼지를 씻어 줘야 하는 운명이라니까 글쎄.”
“우리가 탱탱볼 같다고? 씻길 건 기다리다보면 빗물에도 씻기네. 이 냥반아.”
“그리고 말야 자넨 그 맥주 좀 그만 마시게. 맥주가 수분을 많이 빼앗지 않나. 화장실도 자주 가야하고 말야. 자네같이 물이 중요한 자는 좀 조심하라구. 어?”
“허. 알콜은 다 수분을 뺏는다고. 그것도 모르냐. 그리고 복잡하지만 난 머 요새 수분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라고 쯧.”
그들의 이야기가 두서없이 바 한 귀퉁이에 쌓인다. 맥주 노신사는 신청곡을 종이에 적고 있다. 그걸 흘끗 본 위스키 노신사가 크큭 웃는다.
“아직 청춘이고만.”
마스터는 쪽지를 받아 디제이에게 넘긴다.
“내가 일전에 협회에서 방출됐다고 말야. 우습게보지 말게. 잔뼈 깨나 굵다고 나도.”
위스키 신사가 복싱 하는 동작을 한다. 그러다 의자가 뒤로 자빠질 뻔 한다. 다행히 그는 중심을 잡고 넘어지진 않았다. 그걸 바라보던 맥주 신사가 웃으며 그에게 건배를 청한다.
“이봐 명왕이. 왕년에 한창 놀았나베?”
“나 안 넘어졌어. 이 냥반아.”
위스키 신사가 멋쩍은 듯 머릴 긁는다. 신청곡이 흘러나온다. 바에 앉은 나이든 별들이 추억에 잠긴 듯 잠시 잔을 내려두고 허공을 바라본다.
“거 클리닉 내가 하나 알려줄게. 한 번 상담 받아보라니까.”
위스키 신사가 주섬주섬 지갑을 뒤져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넨다.
“일단 알겠네.”
맥주 신사가 명함을 받아 바로 코트 주머니에 넣는다.
“거 읽지두 않고.”
“내가 알아서 하겠네. 이 냥반아.”
그들의 수다가 음악 위에 옹기종기 얹힌다. 몇 잔을 더 걸치고, 수다를 떨다 맥주 신사가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한다. 모자를 단정하게 쓰고, 코트로 몸을 감싼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가 끙 하며 외마디 앓는 소리를 낸다. 위스키 신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먼저 일어나겠네.”
“내일은 늦지나 말게. 일찍 갈 거면 말야 쫌.”
“알겠네. 알겠어.”
맥주 신사가 계산을 하고 아는 인물들에게 고갯 인사를 건넨다. 그가 문가로 걸어간다. 음악이 끝난 순간 그가 뒤를 돌아본다. 별들의 앓는 소리, 쿨럭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위에 다시 음악이 천천히 내리 깔렸다. 그가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지팡이로 층계를 짚으며, 앓는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조금은 참아보았다. ‘거 습관이라니까 그거.’ 명왕이 던진 말이 귀에 왱왱 거리는 것 같다. 노신사는 골목을 빠져나와 걷는다. 코트 깃을 여미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본다.
행성 전문 클리닉
뒷면엔 전화번호만 달랑 적혀 있다. 명함을 도로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그가 혀를 끌끌 찼다. 바람이 세게 불어오자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탱탱볼이라구? 그럼 그건 누가 튕기고 노는 건데? 하여간. 쯧’